나홀로 외출, 옛 추억 반추 재미 쏠쏠
덕수궁 돌담길, 미술전시회 '나만의 감동'
동행인 없어도 同一視하기에 즐거운 것
설날치고는 따뜻하고 고요한 날씨였다. 남편을 집에 놔두고 집을 나섰다. 양력 설날 차례를 지내고 오후에는 예년과 다름없이 20명의 세배꾼을 치고 난 나는 구정에 혹시 올지도 모르는 세배할 한두사람도 피하고 싶어 도망가듯이 집을 나섰다.
혹시 하는 한두사람을 맞기위해 한복차림으로 집에 앉아있는 그를 놔두고 대문을 나서니 오랜만에 홀가분하고 차분해졌다.
얼마 남지않은 마티스(Mattisse) 전시를 볼 생각이었다. 덕수궁 돌담을 거닐고 싶은 나는 덕수궁정문(大漢門) 앞에서 택시를 내려 돌담을 끼고 천천히 정말 천천히 걸었다.
드물게 한두사람 마주친 외에는 운동화를 신은 나의 발소리가 들릴정도의 조용한 길이었다. 전시회장도 조용했다. 아침결이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마티스는 물론 남불(南佛)의 색채파들의 작품에 나는 흠뻑 빠질수 있었다. 훗날에 들려오는 말 중에는 마티스 작품은 몇 되지도 않고 시시하다라고도 하는 사람이 있다지만 꼭 마티스의 그림이어야 하나! 꼭 마티스 싸인이 있는 색채이어야 하는지? 내게 느껴지는 그들의 색들은 나를 매혹시켰다.
전문성이 없는 나는 그저 흡족한 마음으로 전시장을 나왔다. 저 건너편에 덕수궁 돌담길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오던 길의 돌담은 대한문을 끼고 돌았으나 내 앞의 돌담은 반대편이고 덕수궁 후문앞을 지나가게 된다.
몇해전부터 이 정동쪽의 돌담길 들어 서는 곳에는 바리케이트(?)와 경찰이 있다.
덕수궁후문 맞은 편에 있는 주한미국대사관저의 안전을 돌보기 위해 서있는 사람들! 조금 눈에 거슬리기는 했으나 덕택에 더욱 조용한 그 길을 나는 아주 조용히 자유롭게 즐길수 있었다.
자동차도 다니지 않고 자전거도 보이지 않는 500m도 넘을 길을 아주 천천히 거니는 동안 나의 옛 추억을 방해하는 아무것도 없었다. 1946년(?)부터 1949년사이 내가 이화여고 정문 앞 다세대주택에 살면서 아침 저녁으로 걸어다니던 길.
버스정류장이 광화문에 있었으니 혜화동에 있는 학교로 가기위해 그 길을 매일 즐겼다.
그날보니 구세군본부가 그길에 들어와 있는데 60년전에는 방송국(지금의 KBS1이겠지)이 있었고 그 건너편에는 경기여고, 경기여고의 맞은편에는 덕수국민학교, 그 옆은 덕수교회 등이 있었다. 그날도 아주 작은 덕수초등학교가 보였다.
반가웠다. 50 ~ 60년대 서울제일의 명문초등학교로서 크게 보였던 모습을 회상하면서.
강남으로 떠나가 버린 경기여고의 옛자리는 빈터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그 길을 걷는게 그날 처음은 아니었다. 시립미술관이 3년전 옛 법원자리(현재시립미술관)로 옮긴 뒤에 두세번은 갔었지만 동행(남편, 막내, 언니 등)없이 걸으니 훨씬 감회가 깊고 그리움에 젖어 버렸다.
5월에 피카소(Picasso) 전을 즐길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생각하면서.
지난 4월 갤러리현대에서 있었던 천경자(千鏡子)전은 Matisse나 Picasso와는 달리 훨신 더 친밀하고 놀라웠다.
전에도 천경자전을 두어번 본 기억이 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 보여준 그의 모든 것은 정말 좋았다.
나는 보기는 즐겨도 그림을 알지는 못하는 사람인데 이번에 본 그녀의 1950 ~ 70년대 작품들은 나를 정말 감동시켰다.
전시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화가이기전에 딸이고 여자이고 어머니로서의 정서가 그대로 내 마음에 와닿았다.
현재는 미국에 머물고 있다는 그의 순수함에 경의로움을 금할 수가 없었고 이 <千鏡子 展>을 마련한 갤러리현대에 칭찬을 아니 할수 없었다.
나는 그림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 그져 보는 것을 즐겨 가끔 전시회에 가는 정도지만 내가 영화관에도 혼자 갔었다고 하면 주책 늙은이로 비웃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동행이 없으면 혼자도 간다.
젊어서도 혼자 가는 나를 남편은 비웃기도 했지만 지금도 멀지않은 곳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할 때는 혼자 가기도 한다. 동행이 없을 때지만.
남편도 전시회나 영화를 즐기지만 그는 나보다 훨신 바쁜 사람이라서……. 최근에는 <왕의 남자>를 혼자 보았다.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으나 감명이 깊지는 않았다. 조금은 허구적인 스토리전개도 걸렸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가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설비좋고 작은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게 대학로 지하소극장에서 연극을 보는 것 보다는 훨신 편안한 것은 어쩔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물론 몇 년째 가지 않고 있지만 수년전만 해도 대학로의 지하소극장에 연극을 보러가기는 했다. 채광과 환기가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땅밑에서의 습기와 배우들의 열연으로 춤을 추는 먼지들을 감당해 내기는 내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이제는 지난날의 추억으로 남아버린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북만주연변의 북산언덕의 교정에 피어있던 코스모스밭을 거닐던 감상적인 십대 소녀도 아니고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카렛에 매혹되어 50년대 들어온 명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개봉할때는 물론 두탕 세탕할 때 까지도 보지 않다가 20여년전에야 처음 본 미숙한 쎈치멘틸리스트에서도 벗어난것 같기는 하나 그래도 나의 정서는 아직 미숙하다. 하기야 좋은 책을 충분히 표현하기에는 영화는 아쉬운 경우가 많지만 …….
나의 주위 사람들중에는 내가 상당히 주관이 있다고, 혹은 지적이라는 등의 평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실은 <하루밤 서리에도 금이 갔구려>하는 월북시인 김기림(金起林)의 시 '유리창'의 구절을 내가 좋아하는 까닭은 나와 동일시(同一視)하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쓰다 보니 내가 먼 옛날로 퇴행하는 것 같기만 하니 80대의 낭만이든 감상이든 더 퇴행하기 전에 붓을 놓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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