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봉선화
예술가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무지할 때가 많다. 너무 우쭐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토양 위에서 완벽하고, 새롭고, 고귀하고, 아름답게 자랄 방법을 알고 있는 작은 식물보다는 그 보다 더 대단한 것에 관심을 삼는다. 결국 그들 자신의 정원과 포도밭의 아름다움은 스스로에 의해 피상적으로 평가되고 만다.
1. 봉선화
(1920년 조선에서의 최초의 예술 가곡)
"울 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 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조선의 처녀들이 청초한 그 모습을 그지 없이 사랑해 온 '봉선화'는 길이 수십 센티의 일년생 화초로서 한 여름에 흰빛, 자주 빛, 붉은 빛의 꽃을 피운다. 인도가 원산지라고 하는 이 가련한 꽃은 열매가 익으면 잔뜩 부풀었다가 터져서 씨를 사방에 뿌린다. 그 모습이 침략에 대해 끊임없는 반항을 되풀이해 온 조선 민족에게 있어서는 뿌리깊은 저항 정신을 꽃으로서 한층 다부지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 어언간에 여름 가고 가을 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한 여름의 뜨거운 햇빛 아래 처녀들이 손톱에 물을 들이면서 놀던 평화로운 나날, 봉선화는 거리낌없이 그 행복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불어닥친 차가운 가을 바람은 그 평화를 깨뜨리고 무참히 짓밟아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한가한 조선땅에 흙발로 쳐들어와 총검으로 침략한 일제의 소행과도 같은 것이었다. 제 1절의 내용이 한 여름에 아름답게 피어 있던 봉선화에 대해 애틋한 정을 노래한 것이라면 제 2절은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꽃잎에 대한 슬픈 조사라고 할 수 있다.
"북풍 한설 찬바람에 내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래노라"
가을 바람에 시들어 버린 봉선화는 이윽고 혹독한 겨울이 오면서 시들어 죽어 눈 속에 묻혀 버린다. 그러나 지칠줄 모르는 평화에 대한 꿈은 사라지기는커녕 생명을 잉태한 씨가 사방으로 흩날려 떨어져서 힘차게 대지 위에 그 뿌리를 내리며 일제의 모지 쓰라림을 당한 조국의 비운을 여름에 피었다가 가을에 지는 봉선화에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이제 3절의 시구는 독립을 바라는 조선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으로 자기 집 뜰에 활짝 피어 있는 봉선화를 바라보고 있던 조선 양악계의 선구자인 김형준의 머릿속에는 그와 같은 나라 없는 백성의 슬픔과 광복에 대한 염원이 봉선화의 운명과 중복되어서 4.4조의 격조 높은 시로 승화되어 우리에게 불려질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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